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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교회 찬양/설교 말씀

주기도문 강해 설교

by 힐링칠봉2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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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설교


제목: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5절~13절)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국된 조선이란 나라는 과거 대한민국의 다른 이름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에 근간을 두고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유교에서 예를 중시하는 것 때문에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를 중시하는 유교의 굉장히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교를 기반으로 세워진 조선,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현재의 대한민국은 “예” 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걷과 속이 달라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라는 이름으로 걷과 속이 달라야 함을 가르치는 사상은 기독교 세계관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걷과 속이 같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예” 라는 이름으로 걷과 속이 다름을 어른들에 의해 계속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고픈데 누군가 밥 먹었냐고 하면 배고파도 밥 먹었다고 예기하는 것이 예라고 합니다. 누군가 용돈을 줄 때 아무리 받고 싶어도 한 두번 사양하는 것이 예라고 가르칩니다. 추운 겨울날 난로 앞으로 오라고 해도 저는 안춥다고 얘기하는 것이 예라고 가르칩니다. 

 



“예” 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걷과 속이 다름을 교육하고, 교육 받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기에는 아주 필요한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속마음 그대로 표현하면 버릇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전통을 지켜 소위 말하는 예를 지키며 사는 것은 그런의미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교육받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 대할때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하나님께 표현할 때 너무 예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표현을 쉽게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표현이 무엇입니까? 찬양입니다. 기도입니다. 속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잘 못합니다. 기도를 잘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예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고, 기쁘면 기쁘다고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 실 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아니라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치기시 전에 오늘 본문 5절에서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식이란 단어는 헬라어 “휘포크리테스”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가르치기 전에 대 전제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극중 케릭터를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하는 케릭터를 연기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보는 시간이지 연기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께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길 원하셨지만 당시 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던 바리새인이라는 집단 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은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기도합니다. 말을 화려하게 하고, 말을 많이 합니다. 큰 소리를 내서 기도합니다. 왜 이렇게 겉으로 신앙을 표현 하려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이 좋음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향해 연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기전에 이런 외식하는 모습, 즉 내면은 하나님께 진실하지 못하며 사람에게 보이려는 모습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외식을 이토록 경계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원하는 것은 진실함이기 때문입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은 진실함을 원하셨던 예수님은 8절에 외식하는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본받지 말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골방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6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은 어떤 곳입니까? 헬라어 “타메이온”이란 단어를 씁니다. 이 단어의 뜻은 “밀실”이라는 의미입니다. 밀실은 은밀한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골방은 아무도 없는 은밀한 곳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왜 은밀한 곳에서 만나라고 했을까요? 그곳에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외식할 염려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방에서 기도하는 골방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골방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갚으시겠다”라고 합니다. “갚으시겠다” 라는 말은 응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기도응답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우리는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골방을 찾아야 합니다. 

출처 경안교회 담임목사 고원영

ⓒ Pexel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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